스타르타
스타르타
그대 그리스 시대의 "스파르타"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국가는 전사의 힘을 신뢰 한 나머지, 성벽 등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 제거를 했고 동맹도시국가인 아네테가 있어서 별다른 침략이 없는 상태로 국가를 유지하게 됩니다. 거대 제국 페르시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제압하지 못했던 유일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스파르타는 다른 그리스 도시들과 다른 국가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매우 엄격하고 가혹한 군사 교육 제도가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에서 태어난 소년은 수많은 시련을 거쳐 전사로 길러지고, 그들의 양친은 어머니가 아니라 국가일 정도로 특이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인함의 대명사인 스파르타에서는 몸이 약하거나 질병이나 기형의 아기가 태어나면 그대로 방치하여 죽게 만들었습니다..
7살이 된 소년은 스파르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와 떨어져 교사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그 생활은 무척 가혹한데, 아이들은 서로 집단 괴롭힘이나 도발에 싸우고, 무조건 싸우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리고 교육장소에서는 “여기에서는 평화가 유지되는 장소가 아니다.”라며 어린이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아이들의 주먹으로 결판을 냅니다.
스파르타 교육 중에는 생활 필수품 등은 거의 주어지지 않으며 신발은 사치품으로 간주여기고 맨발로 생활하게 합니다. 배가고프면 훔치는 것을 권장하고 최소한의 양의 식사만 하도록 식량을 충분히 주지 않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의 식사는 배를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만 제공하며 음식 또한 정말 맛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뭔가 더 먹고 싶다면, 스스로 사냥을 해서 먹게 했다고 합니다.
스파르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전사로 태어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대부분이 상인이나 농민이 아닌 군인이였습니다. 그들은 싸우는 방법을 배웠고, 글이 필요할 때만 문자를 배웠습니다.
스파르타인들은 교육도 사치에 해당했고, 철학이나 수학을 배우는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러 도시국가가 그랬듯이 스파르타인에게도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군사 훈련에서 노예를 풀어놓고 소년 군인들이 공격해 죽이게 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그들은 늙어 죽은 스파르타인을 존중하지 않았고 묘비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전쟁에서 죽은 군인의 묘에만 묘비를 허락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여성의 경우 출산하다가 죽으면 전사자와 같은 존중을 받고 묘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